어떤 영화는, 끝이 난 뒤에야 시작한다

남의 영화평에 굳이 왈가왈부 하(고싶)지 않지만, 별 3개를 줄 때의 마음이란, 보다 신중, 신중, 그리고 신중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것도 매체를 빌린 자리라면.


씨네21이 ‘아무도 없는 곳'에 별점 5.2를 매겨놨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에 대한 졸평에 이어 다시 한 번 ‘두 눈’을 의심했는데 이건 좀 많이 틀렸다. 코로나 때문이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찌됐던 극장에서 보지 못한 채 이야기하는 게  주저되기도 하지만, 김종관 감독의 ‘아무도 없는 곳'은 올해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지금 이 시절에 의미가 더 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조춘'과, 동물원에서 연인을 기다리지만 오지않는 시간 만이 존재했던 그 ‘아무 것도 없던 시간'과 결을 같이하는. 하지만 그보다 김종관의 영화가 늘 남겨 놓았던 엔딩 이후 남아있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직접적으로는 이지은 배우가 길을 걷던 밤 속에 숨어있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듯한 묘한 체험의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나 바텐더 주은이 창석의 시를 읊어주는 장면에서, 영화는 그곳에서 유일한 세계가 되었다 돌아오고, 한폭의 꿈이 감싸고 있는 83분의 이 짧은 영화는 무한한 정적으로 남는다. 오직 대화의 힘을 빌려 말하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 난 여전히 그의 그 ‘다음, 이후’가 궁금하고, 이별, 상실, 죽음. 모든 떠나간 것들의 세월이 그곳에, 그렇게 있다.


by ABYSS | 2021/08/28 17:59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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