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남자의 시작과 지워지는 청춘, D.P 단상

이런 얘기 아마 가장 할 자격 없는 1인 중 한 사람이지만, 지금 화제중인 D.P는 사실 초반 얼마 지나지 않아 돌려버렸다. 못이 박힌 벽 앞에 굳이 ‘세워두고’ 부하 장병 가슴을 업박하듯 내리치는 장면은 폭력 주체인 상병 군인의 가학성을 (교묘히 계산된 수법에 불과하지만) 사고로 무마될 우발성과 같은 선상에 ‘세워놓고', 보는 이를 방관자, 곧 공범의 자리에 놓아버린다. 그런 동조를 유발하는 시선이 불편했을까. 피하고 싶었던 걸까. 당하는 피해자도 가하는 피의자도, 그리고 보고있는 사람도 모두 알고있지만 피할 수 없는, 혹은 그러지 않는 폭력의 방치. 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폭력, 비판하기 위해 자행되는 폭력의 폐해는 종종 거론되지만, 사실 폭력이란 보다 내재적이고 동시에 잠재적이라 일상 구석구석 체감하지 못하는 순간, 이미 발동하고 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혹시 폭력(적)이었을까. D.P를 다시 본 건 누군가의 호평, 그런 안심 장치를 확보해 두고 난 뒤에서였고, 폭력은 아마, 내게도 있다.


아마 가장 좋아하지 않는 장르물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힐 군대물 D.P를, 그래도 마지막까지 볼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오프닝에서 느껴지던, 그 시절 누구나 갖고있는 아련한 기억으로서의 서사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제복을 입고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자리에서 매일같이 같은 하루를 사는 군인 일병이거나 이병. 하지만 포스터 속 준호, 정해인의 뒤를 바라보는 모습처럼 이 드라마느 그곳에 좀처럼 포박되지 못했던 청춘, 20대 초반 젊음으로서의 꿈틀대는 시간을 결코 잊지 않는다. 좀 과장하자면 여고생 방황기에 ‘고양이를 부탁해'가 있었던 것처럼, 한국 영화/드라마 속 유독 비어있던 부재의 20대 남자 서사를 D.P는 어쩌면 돌아보려 한다. 여기엔 무엇보다 구교환이 연기한 호열의 캐릭터가 한몫을 하는데, 군대란 시스템에 부적응이 아닌 조롱하듯 그를 넘어서는, 개입하지 않고 관망하며 뛰어넘는 제스쳐, 무엇보다 유머가  D.P를 단순한 군대물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한다. ‘킬 유어 달링' 속 데인 드한, 앤런 긴즈버그 곁의 루시아 카가 떠올랐다면 좀 과장일까. 하지만 실제 남중남고엔 그와 같은 친구가 꼭 한 명 씩은 있었다.


전체적으로 자기 고발적 서사를 취하는 D.P에서 D.P란 탈영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부서. Deserter Pursuit의 약자. 풀어보면 부대를 이탈한 병사를 좇는 사람이란 뜻이고, 이는 곧 군대란 시스템이 자초한 구멍을 스스로 떼워내기 위해 출동하는 2인조 병사에 다름없다. 군대란 조직을 지키기 위해 동원되는 군대 내 경찰. 경찰 밖의 경찰. 탈영 뉴스가 군 밖을 벗어나기 전에, 군의 영역을 넘어서기 전에 D.P는 재빠른 입막음을 할 필요가 있고, 내가 D.P란 용어를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된 건 비단 내게 군경험이 없어서일 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방관자는 무력하고, 계급과 함께 폭력이 승계되는 2년 남짓 세월속에, D.P를 동원 꾸준히 폭력으로 얼룩진 상처를 봉합하며 흘러가는 너와 나(...는 아니지만 우리)의 이팔청춘. 수 백 번의 욕설을 감내하며 내가 바라본 건, 그곳에 태어나는 K-남자와 잊혀졌던 너의 앳된 젊음이었다 .


by ABYSS | 2021/09/23 16:06 |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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