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낯선 하루도 어느새 어제가 되어있었다

레터를 시작하고 9개월, 어제 밤 스다의 라디오를 들으며 이제 올해도 딱 1분기가 남았다는 소리에 그나마 조금 실감이 됐는지 모른다. 주제만 정했을 뿐(그 조차 여러 번 바뀌었지만) 어느 하나 정해진 게 없는 레터는 그야말로 지난 나의 9개월을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새삼 시작하는 말과 마무리의 말이란 세상 어느 글보다 어렵다고 느낀 9개월이기도 하다. 최근엔 그나마 좀 쌓인 레터 덕에 #OO호란 말에 기대기도 했지만 더러 몇몇은 틀린 숫자였고, 와중에 본 레터와 다른 형식의 말하자면 서브 레터가 2종 늘어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지난 주 발행은 #34호. 남아있는 1분기, 11주가 더해지면 모두 45호의 2021이 끝나버리는 걸까. 나머지 3주는 어디갔나 싶고 어쩌면 코로나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여지없이 내탓이란 맘에 할말을 잃는다. 다만, 어쩌다 기록하게 된 나의 코로나 그리고 1년은 왜인지 묘하게, 이곳에 흘러간 ‘낯선 내일의 일기’가 되어있었다. 


2년 전 무렵, 이토이 시게사토가 주관하는 ‘호보니치'는 코로나 이후 스태프들의 일기를 기록, 공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토이는 ‘수프를 먹는 것처럼, 뜨거운 죽을 한 숟가락 뜨는 것처럼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리의 모습을 이곳에 남겨두려 합니다’는 말로 그 취지를 설명했다. 사실 사람의 기억이란 애매하고 부정확하고 심지어 틀린 사실의 드라마이기도 한지라 1년 전 일이 고작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지난주 만남이 아득한 기억이 되어있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위드 코로나'가 되기까지, 2m란 숫자를 ‘프리백신'이 대체하기 까지. 수많은 내일이 찾아와 하나둘 어제가 되어간다. 갑작스런 폐업에 아파하던 맘도, 돌연 달라진 일상에 허둥대던 아침도, 와중에 보이지 않던 ‘잠재 가치’를 발견하고 최선 아닌 차선의 한발을 내딛던 날들도, 모두 오늘이 되었고, 다시 어제가 되었다. 마스크가 일상 소모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낯설던 그 봄날도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멀고도 가까운 어제와 내일처럼. 마치 내일과 어제가 서로 자리를 바꾸듯. 역전되는 너와 나의 시간들. 


‘호보니치'의 나카타란 직원은 ‘일기는 곧 오늘의 증거를 남겨두기 위함'이란 말을 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오늘이 아니었으면 모두 길을 잃고마는 어제와 내일일 뿐이다. “우리는 고유명사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이 애매해 단서를 남겨야 합니다.” 나는 결국 나에게 레터를 보냈던 걸까. 코로나가 시작되고 첫 번째 여름, 난 ‘소셜 디스턴스가 아닌 ‘피지컬 디스턴스'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진은 이안 슈뢰거와 쿠마 켄고의 작업이 더해진 호텔 '도쿄 에디션 토라노몽'

📫 도쿄를 이야기하는 뉴스 레터, 발행중입니다.

https://maily.so/tokyonotable


by ABYSS | 2021/10/13 14:03 | Ein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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