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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학동역을 걷는다. 10년을 회사를 다녔지만 역에서 하루를 시작한 적은 거의 없고, 일의 특성상 게으른 오후의 택시거나 늘어진 아침의 길을 밟고 회사에 갔다. 뒤늦게 집을 나서서도 카푸치노에 스콘까지 사들고 갈 정도의 시절이었다.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오기까지, 나는 택시를 기다리게 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공덕까지, 신촌과 신수동, 삼선동과 이태원2동, 그리고 신사동. 루트는 그럭저럭 바뀌었지만, 아침 없는 날들은 허무한 하품을 하며 마감으로 끝이 났다. 때로는 새벽같이 일어났고, 때로는 새벽에야 눈을 감았다. 점심이 다되어 밖에 나가, 카페에 앉아, 무언가를 먹거나 무언가를 쓰거나, 때로는 무언가를 보거나 무언가를 읽거나. 그 시간이 버거워질 때 쯤, 아침의 학동역을 걷는다. '출근'이란 걸 한다. 세워보니 지하철만 정류장이 30개. 빼도박도 못하는 아침에 출근을 한다. 에스컬레이터에 줄까지 서곤하는 10번 출구를 나가, 몇 걸음 걸어 할리스 계단을 오르고 카푸치노, 허기가 지는 날이면 리스트레토 라떼를 주문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할리스의 몇몇 곳은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나는 그곳에서 만화 같은 하루의 다짐을 하기도 한다. 아침의 학동역은 내가 일하던 곳에서 고작 몇 백 미터도 떨어진 곳이지만, 나는 이곳의 아침을 이제야 바라보고, 그곳의 아침은 나에게 그저 상쾌하다. 별 다를 것 없는 건물과 건물, 별 다를 것 없는 사람과 사람. 하지만 나는 그 평범한 풍경의 아침을 잊은 지 오래다. 유독 넓은 할리스 매장 구석구석 핸드폰을 보거나 노트북을 펼쳐놓은 사람들. 세월 너머 자고있던 아침이란 시간, 그런 도시의 잊고있던 풍경. 나는 체인점의 모닝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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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꿈이 그림처럼 느껴지..
by ABYSS at 01/11 전 잠이 들기 전, 아직 의식.. by rumic71 at 01/10 사실 되게 고혹한 시간일 수.. by ABYSS at 12/25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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